선흘볍씨마을 협동조합에서 운영 중인 ‘할머니의 예술창고'는 10월 말까지 매주 목, 금요일 두 개의 [삼춘예술학교](제주에서는 성별 상관없이 이웃 어른을 ’삼춘‘이라 칭한다)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 ’할머니의 예술창고는‘ 제주 선흘리에 살고 있는 60~80대 노년 여성들을 대상으로 ‘창고’라는 공간에서 여성의 삶을 추억하고, 현재 삶에 집중하고 즐길 수 있는 예술프로그램이다.

그렇다면 왜 창고일까? 제주의 창고는 여성의 일터이자, 창조의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제주여성의 삶을 풀어내는 과정으로 그녀들이 주로 활동하고, 친숙한 공간에서 시작해나가는 것이다. 창고는 참여하는 여성 자신으로 투영될 수 있는 공간이다. 한창 활동할 당시에는 창고에는 활력이 넘치고, 활동에 필요한 물건들로 가득했을 것이고, 먼지쌓을 틈 없이 관리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창고는 주인과 함께 나이가 들어 물건도 점점 줄어들고, 먼지가 쌓인 채 있다. 그렇게 조용해지고, 쓸모가 거의 없어진 창고를 다시 ‘삶을 복기하고, 숨을 넣어주는 공간, 창조의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주된 활동이다.

10월 14일 3회차로 진행된 프로그램은 할머님들의 오래된 물건에 금박, 은박, 자개를 붙이는 작업으로 그 물건에 담긴 추억이나 의미 등을 되새기고, 현재에 맞게 해석한다. 그럼으로써 창고의 구석에 방치된 물건이 아닌, 지금 의미 있고, 아름답게 빛나는 ‘물건’이 된다.

“이건 도로깨! 이거는 영영(‘이렇게’를 뜻하는 제주어)하는거라. 영 하면 저 쪽 사람이 탁 치고, 저쪽에서 탁 치면 내가 영 탁 치고.” 도리깨를 들고 시범을 보이던 홍태옥 할머니가 시범을 보인다. 그리고 옆에서 보던 다른 참여자분이 나와 도리깨를 이어받아서 “(손잡이를 만지며)이 낭(나무)은 종낭. 왜냐면 종가시꽃이 펴서. (터는 부분을 손으로 만지며) 이것은 윷놀이낭이. 왜, 윷놀이 회초리로 써서. 이것은 세고 부드러운 나무(를 썼다.). 아이고 재미나다. 옛날 물건 나오니 이야기도 하게 되고, 옛날 생각도 나고” 하며 대화의 흥이 올라온다.

(도리깨질을 보여주는 홍태옥할머니)

도리깨에 대한 경험과 추억이 60대 여성과 80대 여성의 삶을 연결하고, 서로 공감하고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개별 경험의 차이는 이야기를 더욱더 맛깔스럽게 하며, 차이에 대한 수용과 이해도를 높인다.

(아들 이름을 자개로 새긴 홍태옥할머니)
개근참여자인 홍태옥 할머니는 이번 프로그램에서 오래된 키를 가지고 와서 자개를 붙이는 작업을 하는데, 그 자개에 자신에게 의미 있는 사람인 아들의 이름을 새기었다. 홍태옥할머니는 단순하게 기법을 배우는 수준을 넘어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한다. 그 전 ‘명패 만들기’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빗자루 만들기를 연결하여 빗자루와 꽃을 자개로 표현하였다. 할머니만의

‘것’이고, 이것은 할머니를 드러낸다. 즉, 할머니는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그 작품은 할머니의 역사, 할머니의 인식표가 된다.

(옛이야기창고이자 분위기메이커 윤춘자할머니)
또 다른 참여자인 윤춘자 할머니는 틈틈이 옛이야기를 한다. 다른 참여자가 가져온 밥그릇을 보고 “옛날엔 여기에 보리밥 된장 이렇게 먹었주게.”하고 옛날 먹고사는 이야기를 하고, 갓을 닮은 물건에 자개를 붙이며 “우리 시아방(시아버지)이 망건 만들었주게.”하며 시아버지와 망건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옛날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요즘엔 아들이 늦게 들어오면 자기가 알아서 먹고 치워.” 라고 이야기를 꺼내니, 다른 참여자가 “아드님이 그렇게 하면 어떠세요?”라고 묻는다. “좋주게. 옛날에는 여자가 다 했는데, 이제는 꼭 그렇지만은 않주게.”라고 답하자, 또 다른 참여자가 “요즘은 안 하면 같이 못 살주게. 남자여자 평등한 거, 공평한 거가 중요하지마심.”라는 성평등 이야기가 함께 나눠진다.

그리고 윤춘자할머니는 강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이거 못할거라...”면서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막상 작업을 시작하니, 집중하며, 강사님에게 이런저런 아이디어나 팁을 주기까지 한다. 할머니가 예술을 모른다 할지언정 삶의 선경험을 통한 ‘지혜’는 있다.
그리고 동네의 볍씨학교나 볍씨공동체 이야기를 할 때는 윤춘자할머니는 “아이들이 참 이뻐. 인사도 잘 하고... 학교가 있으니 마을이 더 좋아졌어.”라고 말한다. 다른 참여자가 “아이들이 이뻐요?”라고 물으면 “이쁘지. 인사도 잘 하고, 잘 웃고... 잘 먹고...”라고 답한다. 현경숙참여자도 “마을도 학교도 서로서로 좋주게. 마을도 밝아지고, 이렇게 좋은 활동도 하고, 특별하고 의미 있게 보내고...”라고 말한다.
볍씨학교의 아이들이 삼촌의 창고를 찾아가 그림도 그리고, 삼춘들과 이야기도 나눈다. 한 아이가 그림 옆에 쓴 글 ‘삼촌이 매일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어요.’가 오래 시선을 붙잡는다.
[삼춘예술학교]는 지난 5월부터 그림으로 기록하고 인터뷰 한 선흘지역의 할머니의 창고 이야기를 책으로 펴낼 예정이다.

(‘삼촌이 매일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삼춘예술학교]를 통해 ‘노년의 삶’을 꿈꿔본다. 늙는다는 것이 ‘낡아지고 사라진다’로 받아들여지지 않길 바란다. ‘삼춘예술학교’처럼 친숙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 안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가지고 다양한 세대와 공감하고 소통하는 노년을 꿈꿔본다. 그래서 ‘노년’이 ‘여유롭게 돌아보고, 거듭나고, 새롭게 변화하여 현재와 연결되어 살아가는 시간’이길 바라본다.

(현경숙 삼춘 창고_ 창스 그림_종이 위에 오일 파스텔, 2021)

기사 작성자 : 바느질 기자단 방성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