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취재 날짜는 자꾸 연기되고,

올해는 비도 더 잦은 것 같다.

상황도 좋아지고, 해도 나는 날이 올까.
 

1. 찾아가는 길

다행히 10월 들어 확진자수가 줄어들었다.
2021년 10월 13일 수요일 오전.
취재 날짜가 잡혔다.
하지만 제주시는 어제부터 빗살이 오락가락이다.
자동차로 1시간여를 달리는 중에도 와이퍼는 쉴 줄 모른다.
한경면 한적한 시골 마을 한가운데 '물드리네'에 도착했다

2. 여는 마당

오늘로 7회 차 수업이다.
본격적인 수업을 하기에 앞서 ‘여는 마당’으로 시작한다.
우선, 각 조마다 맘에 드는 물건 5가지를 찾아와야 한다.
사람들 뒤를 좇아가며 보니
도라지꽃, 가지, 수세미, 감, 토란잎, 조롱박, 작은 항아리…,

참 아기자기하다.

대결 종목은
누가 누가 길게 늘이나, 누가 누가 높이 쌓나.
다들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시끌벅적 웃음소리가 자꾸 나온다.

마지막 과제는 나만의 스토리 만들기이다.
즉흥으로 만든 이야기 속에 잘 살고 싶은 마음을 담는다.

“(1조) 태어나서 사는 데까지 인생이에요.
많은 걸 쌓기도 하고 잃기도 하지만 결국 땅으로 돌아가요.”

“(2조) 흙 속에서 자라는 것, 흙에서 나서 매달려 있는 것들을
탕약 통에 넣고 잘 달여서 보약 한재 지어 드리고 싶어요.

“(3조) 학이 우물가에 왔다가 텃밭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고 행복한 미소를 지어요.”

“(4조) 예쁜 꽃잎차를 마시면서 힐링 요가를 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먹고,
설거지 깨끗이 하고, 이 실처럼 오래 오래 살아요.”

3. 염색

즐겁게 몸을 푸는 동안 날도 개고, 해도 났다.
이제 본격적으로 감물 염색을 할 것이다.

피염물은 3가지.
1번 원단, 2번 스카프, 3번은 원단(먹물) 순이다.

스카프는 감 염색을 하고 나중에 다시 쪽으로 염색할 것이다.
이렇게 ‘감쪽 복합 염색’을 할 때는
반드시 한 공정을 끝내고 다음 공정을 해야 한다고 한다.
천연 염료는 성질이 달라서 섞이지 않아
염색이 안 되기 때문이다.
염색이 끝나면 후처리를 한다.
일종의 코팅(콩즙, 찹쌀풀)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고 나면 물이 거의 안 빠진다.
이곳에서는 감물로 색도 바꾸고, 풀기도 넣고, 코팅처리도 한다.
제주에서 감 염색을 많이 한 이유가
이런 기능적인 측면 때문이다.

참, 주의사항이 있다.
감은 마르기 전에 네 귀퉁이를 고정하면 안 된다.
감은 수렴성이 있어서 마르면 원단이 줄어든다.
또 하나, 감물이 묻은 장갑으로 다른 곳을 만지면 안 된다.
물들 수 있다. 그래서 물들어도 괜찮을 옷을 입어야 한다.

이제 2인 1조가 되어 염색을 시작한다.
7회 차쯤 되니 설명만 듣고도 무엇을 어떻게 할지 금세 안다.
생각보다 자박자박한 염색물에 원단을 담그고, 잘 스며들게 조물조물 주무른다.

양쪽에서 잘 잡고 짠 다음, 넓게 펼쳐 대각선으로 두 번씩 당기고,가운데서 양쪽으로 팡팡 턴 뒤 고스란히 아래로 펼쳐놓는다.
두 사람 손이 잘 맞아야하는 작업이다.
끝자락 말린 것도 꼼꼼히 다 편다.

모두들 땡볕에 열심히 작업해서 파란 잔디 위에 여기 저기 하얀 천을 깔아놓았더니, 그것도 한 풍경이 되었다.
카메라를 들고 지붕에 오른 강사 분을 보고 덩달아 사다리를 올랐다.
높은 데서 보니 군데군데 앉아있는 사람들까지 모두 어우러져 그림처럼 보인다. 찰칵!

오늘 작업은 마무리되었다.
깨끗이 뒷정리를 하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5. 기자의 스토리

사실, 수업 중에는 사진 찍고, 메모하고, 녹음하고, 인터뷰하느라 바빴다.
이렇게 돌아와서 사진도 보고, 녹음한 말도 들어보고, 취재한 과정을 모아보니,
그분들이 모두 참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좀 들어서 보니, 제주어에 제주 사람들의 삶과 문화가 고스란히 들어있었다는 생각도 들고,
선주민이든 이주민이든, 잘 몰랐던 과거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제주는 먼 옛날 유배지로나 올 만큼 척박했고,
아픈 현대사를 겪으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곳이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삶이 아니라 문화로 제주를 만나는 시대가 되면서, 우리가 살아야 할 제주는 달라지고 있다.
고립된 제주가 아니라 사람들이 오고가며 서로 소통이 필요한 곳으로 말이다.

그럼
생태문화예술교육이란 무엇일까? …
자연에 의지해 살던 시절의 삶을,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문화, 예술로 풀어내는 과정이라고 하면 어떨까.
우리 시절의 삶을 천에 물들여
다음 세대에 전하는 소통 창구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그 시절, 그 세대만이 물들일 수 있는 무늬가 있을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떤 무늬를 전해줄 수 있을까.
우리는 무엇이었다고 말해줄 수 있을까.

해답은 …
그저 이 시대를, 지금의 나를 충실히 사는 것 말고는 없을 것 같다.
좋든 나쁘든, 그래서 좋아하든 싫어하든
지금의 나를 충실히 안아주는 삶. 그 속에 진실이 있을 것 같다.
다 같이 어떤 할망 이불을 완성할지 무척 궁금하다.

<틈새 인터뷰>

“입도하고 늘 천연염색 생각이 있었다. 전에 정말 버려질 옷(원피스, 목 늘어난 티셔츠)을 가져와서 염색했는데, 지금까지도 멀쩡하다. 애들이 너무 좋아해서 못 버릴 것 같다.”(안은진, 40대)

“전에 여기서 염색수업을 했었다. 시골에는 얘기할 수 있는 젊은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참여하게 됐다.”(강승희, 50대)

“천연염색을 하고 싶었는데, 제주도 살면서도 못했다. 할머니, 어머니 하시는 것은 봤는데, 직접 해보지 못했다. 염색만 하지 않고 감나무에 대한 얘기도 하고 둘러보고 꽃도 볼 수 있어서 좋다. 모두 초면이지만 올 때마다 번호를 뽑으면 매번 다른 사람과 자리에 앉고 친해질 수 있었다.”(고찬희, 60대)

“작년에 육지에서 왔다. 제주도가 예쁜데 혼자서 찾아다니기 힘들었다. 아이 학교 보내고 나면 무료했는데 생활의 활력이 된다. 이렇게 새로운 사람 만나고 오랜만에 몸을 쓸 수 있는 활동을 하면서 학창 시절도 생각나고 좋았다.”(윤선영, 40대)

“염색, 바느질에 관심이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 만나서 거리감 없이 얘기하고 공감할 수 있어서 좋았다. 제주에서 자랐지만, 제주 문화에 대해 잘 모르고 자란 것 같다. 더 알고 싶다.”(오은정, 40대)

“코로나 때문에 서로 힘드니까 마음의 해방감도 느끼고, 자유로움을 느끼면 좋겠다.”(허지영 강사, 40대)

“감 염색만 하는 수업보다는 여는 마당, 제주어, 제주 시 등을 공유하며 사람들과 소통하며 힐링하는 시간이 됐으면 했다. 그래서 자리도 오는 순서로 제비뽑기해서 앉도록 했다. 선주민, 이주민 구분 없이 제주 문화를 통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김미선 강사, 50대)

기사 작성자 : 바느질 기자단 김지현